
나는 더 이상 ‘편리함과 속도’라는 특수한 영역에서 한국 스타트업이 성공할지를 함부로 예측하거나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그 이유는 무려 3번이나 틀린 판단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대한민국 사람들은 빠른 속도를 중시하며, 편리함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특성으로 인해 내가 예상치 못한 스타트업이 크게 성공하는 모습을 자주 봐 왔다. 오늘은 그 대표적인 세 가지 사례를 공유해 보고자 한다.
1. 토스(Toss)의 성공

미국의 페이먼트 서비스 ‘벤모(Venmo)’를 카피캣한 토스의 등장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별로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 뱅킹 시스템은 굉장히 느리고, 불편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 미국에서 은행으로 돈을 보내려면 며칠이나 걸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그런 비효율적인 환경에서는 Venmo 같은 간편 송금 서비스가 혁신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토스가 나오기 전에도 이미 은행 간 이체가 미국보다 훨씬 빠르고 편리했기 때문이다. 물론 몇 번의 터치가 더 필요하긴 했지만, 계좌번호만 있으면 이체가 즉시 가능했기에, 나는 토스가 제공하려는 “전화번호로 돈 보내기” 정도의 차별점을 그리 특별하게 느끼지 못했다.
나의 예상: “이미 충분히 편리한데 뭐가 더 좋겠어?”
결과적으로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국 소비자들은 이미 편리한 상황에서도 ‘조금 더 간편하고 직관적인 UX’를 훨씬 가치 있게 받아들였다. “매우 빠르고, 더 쉽게 쓸 수 있는 서비스”라는 점이 토스를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2. 쿠팡 로켓배송의 성공

미국의 경우, 아마존이 배송 혁신을 이뤄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땅이 넓다 보니 배송에 오래 걸리고, 일주일 이상 걸리는 경우도 흔했다. 그렇기에 ‘빠른 배송’ 자체가 미국에서는 엄청난 혁신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은? 땅덩이가 작고, 이미 다른 쇼핑몰들도 1~3일 이내에 물건을 받아볼 수 있었다. 그 차이가 ‘이미 충분히 빠른데, 더 빨라봐야 얼마나 차이가 나겠어?’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쿠팡의 로켓배송에 대해서도,
나의 예상: “배송을 하루나 반나절 정도 더 줄인다고 해서, 소비자가 크게 열광할까?”
라는 판단을 했고, 결국 또 틀리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미리 주문해두면 다음 날 아침에 도착하는 속도”라는 것은 한국 소비자들의 신속함을 선호하는 성향과 편리함을 중시하는 특징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무거운 생수나 급히 필요한 생필품을 ‘당장’ 주문해서 하루 만에 받아보는 로켓배송은 쿠팡의 성장을 견인했고, 그 성공 스토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3. 전동 킥보드의 성공

201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전동 킥보드를 열심히 타고 다닐 때, 실리콘밸리 창업자들과 이런 얘기를 나눴다.
“한국에서도 전동 킥보드 서비스가 잘될까요?”
내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한국은 대중교통이 너무나 잘 되어 있고, 버스-지하철 환승체계가 카드 한 장으로 편리하게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굳이 전동 킥보드를 이용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지형이 험하고, 대중교통이 한국만큼 촘촘하지 않으니 킥보드가 인기를 끈다고 봤다.
하지만 몇 년 뒤, 한국에서는 전동 킥보드가 엄청난 속도로 퍼져나갔다. 물론 최근에는 안전 문제 등으로 규제가 강화되고 있지만, 한때는 길 위에서 전동 킥보드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성행했다. “걸어서 10분 거리를 3분 만에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 아닐 수도 있지만, 한국인 특유의 ‘더 빠르고 편리하게’라는 니즈를 또 한 번 정확히 충족시킨 사례가 된 것이다.
결론: ‘더 빠르고, 더 편리해야 한다’는 한국 시장만의 독특함
이 세 가지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깨달은 점은, 한국 소비자들은 이미 충분히 편리한 환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새로운 서비스에 열광한다는 것이다.
- 토스는 이미 빠른 은행 이체를 더 간편화했다.
- 쿠팡 로켓배송은 이미 짧은 배송 기간을 거의 ‘당일 수준’으로 단축했다.
- 전동 킥보드는 이미 촘촘한 대중교통망 위에도 ‘더 빠른 이동’을 제공했다.
한국 시장은 ‘더 빨리, 더 편리하게’라는 모토에 놀라울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어찌 보면 사소해 보이는 UX 차이, 혹은 하루 정도 빠른 배송 시간이 한국인들의 소비 패턴을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3번의 실패 예측으로 절실하게 배웠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한국에서의 스타트업 아이디어 성공 여부를 쉽게 예측하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편한데?”라는 내 판단이 틀렸던 사례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냥 “혹시 또 혁신이 될지 모른다”라는 열린 마음으로 지켜보는 편이다. 아마 이것은 한국이라는 독특한 시장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리고 새로운 서비스를 기획하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한국 시장에서는 이미 충분히 편리해 보여도, 조금 더 빠른 서비스와 조금 더 간단한 UX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3번의 실패 예측 끝에 얻은 교훈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